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시다 마사타카 (문단 편집) == 지도자 생활 == 은퇴 후인 1989년 NHK에서 야구 해설위원이 되어 일하다가[* [[1989년 월드 시리즈]]를 중계하러 갔다가 그 때 갑자기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문에 졸지에 재난 취재 특파원이 된 일화도 있다. 우연일지 몰라도 감독 취임이나 퇴임한 해에 지진이 일어나는 징크스가 있었다.] 1993년 [[긴테츠 버팔로즈]]의 코치, 1996년 2군 감독을 거쳐 2000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1999년 연고지 [[오사카]]를 팀명에 도입)의 감독이 되었다. [[파일:external/0db7e2b10147a85dfd104d559d3fe93c66157b283080c17a6bd0187124c7561f.jpg]]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최후의 감독. 감독 첫 해엔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퍼시픽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이듬해인 2001년에 [[터피 로즈]], [[나카무라 노리히로]] 등이 포진한 막강타선의 폭발력과 선발진의 신예 [[이와쿠마 히사시]]의 분전으로 투수진의 집단 부진[* 팀 방어율이 시즌 말까지 5점대에서 놀다가 시즌 막판 간신히 분전하며 겨우 4.98에 그쳤다. 2001년 당시 긴테츠 소속이었던 [[카도쿠라 켄]]도 8승 5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6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였다.]을 땜질해가며 킨테츠의 4번째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이 시즌 전에 [[키타가와 히로토시]]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한신 타이거스]]에서 데려왔는데, 키타가와는 그 유명한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나시다의 선택에 제대로 보답했다. 그러나 [[2001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선 [[이시이 카즈히사]], [[다카쓰 신고]] 등의 투수진에게 강타자들이 꽁꽁 틀어막히면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게 1승 4패로 패배하고 말았고, 후술하겠지만 이것이 킨테츠의 마지막 [[일본시리즈]]가 되면서 킨테츠는 끝내 55년간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일본시리즈]] 제패를 달성하지 못한 팀으로 남고 말았다. 그 뒤에도 감독직을 맡으며 2위-3위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2004년엔 초반부터 최하위로 추락하는 불안한 시작과 함께 하위권에 머물렀고 설상가상으로 시즌 도중 그동안의 막대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모기업 [[킨키 일본 철도]]에 의해 팀이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흡수합병하는 것이 결정되면서 생겨난 프로야구 재편문제와 이에 반발한 선수회의 파업 선언 등 내외적으로 진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이해부터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유사한 방식으로 도입된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마지막까지 분전했으나, 끝내 5위로 진출에 실패하며 그 해를 끝으로 킨테츠의 해체와 함께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나 나시다는 구단 역사의 마지막에 [[명언/야구|야구 역사상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2004년]] [[9월 27일]], 시즌 최종전이자 [[킨테츠 버팔로즈]] 구단 역사상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전 날[* 공교롭게도 본인들을 흡수합병하게 될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그린 스타디움 고베|야후 BB 스타디움]] 원정경기였다. 경기는 2:7로 패배했으며, 이 날 승리투수는 [[구대성]]이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모두들 가슴을 펴고 플레이해라. 너희들이 달고 있는 [[등번호]]는, 모두 킨테츠 버팔로즈의 [[영구결번/스포츠|영구결번]]이다(みんな胸を張ってプレーしろ。お前たちが付けている背番号は、すべて近鉄バファローズの永久欠番だ).''' 비록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라는 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이 팀에서 마지막까지 뛰었던 선수들은 버팔로즈 최후의 선수로써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의도에서 남긴 말로, 함께 해체의 아픔을 겪는 선수단과 팬들을 위로하는 말로써 야구 팬들에게 현재까지 유명한 명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NF-Masataka-Nashida20100513.jp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시절의 사진 (2010년) 시즌 종료 후엔 양 팀의 합병으로 탄생한 [[오릭스 버팔로즈]]의 수석 코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채 그대로 야인이 되었고, 이후 다시 [[NHK]] 등에서 야구 해설가로 일하다가 2008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닛폰햄 시절엔 4년 간 퍼시픽리그 3위-우승-4위-2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2009년엔 시즌 도중 터진 팀 내 [[인플루엔자]] 감염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팀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2009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일본시리즈]] 사상 초유의 [[더그아웃 시리즈]]가 열린 [[1981년 일본시리즈]] 이후 28년 만의 맞대결로, 닛폰햄 입장에선 당시 패배한 복수를 이룰 기회였으나 결국 그때와 똑같은 2승 4패로 패했다. 이 두 팀은 [[2012년 일본시리즈]]에서 다시 한 번 맞붙어 여기서도 요미우리가 이겼다.] [[파일:external/www.nikkansports.com/P2015112303047_miu_nashida-ogp_0.jpg|width=4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시절의 사진 (2016년) 2011년을 끝으로 닛폰햄을 떠났고, 이후 또다시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일하다가 2015년 시즌의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사임한 [[오쿠보 히로모토]]의 뒤를 이어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라쿠텐이 킨테츠의 해산으로 인해 생기게 된 구단이란 점에서 어찌보면 구단 창단의 계기와 엮인 인물을 데려오게 된 것.[* 실제로 라쿠텐 감독으로의 취임이 결정되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킨테츠 소멸 이후 라쿠텐을 킨테츠의 후신처럼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다만 감독 취임 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개최한 킨테츠 OB 행사에 참석한 전적도 있어서 이 발언은 [[립서비스]]가 어느 정도 섞여 있다고 봐야 할 듯.] 부임 첫해에는 전임 감독인 [[오쿠보 히로모토]]가 말아먹은 팀을 추스리느라 5위에 그쳤다. 그러나 2년차에는 본인의 두번째 해 징크스를 재현이라도 하듯 시즌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한 때 승률 7할을 넘을 정도로 압도적 성적을 거두고 7월 말까지 선두자리를 유지하면서 도호쿠의 팬들에게 혹시나하는 기대를 가지게 했으나 시즌 초반 쌀쌀한 도호쿠 지역의 날씨를 고려해서 일정을 느슨하게 짰던 대가로 8월 이후의 과밀된 일정을 버티지 못하고 DTD를 시전하면서 3위로 추락했다. 그래도 우승 이후 3년동안 6-6-5를 찍었던 팀을 다시 포스트시즌으로 진출시켰으나 8월 이후의 DTD가 워낙 심했던 까닭에 지휘 능력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경질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우승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분투했으나 끝내 패배하며 아쉽게 2017시즌을 끝냈다. 2018년에는 41경기까지 14승 26패를 기록하면서 퍼시픽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 시즌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행보를 보였다. 부임 이전부터 몇 년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었던 라쿠텐의 여러 가지 불안요소가 터졌다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로, 교류전에서도 퍼시픽리그의 다른 5팀이 상위권을 석권하는 동안 혼자만 최하위에 쳐져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이다 6월 16일 한신 전에서 8회말까지 1대0으로 앞서고 있었으나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를 무리하게 9회까지 끌고가다 역전패하면서 21승 41패로 승패마진이 -20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날 경기가 끝난 직후 라쿠텐 구단에 사임의사를 밝히며 팀을 떠나게 되면서[* 사임 직후 인터뷰에 의하면 승패마진 -20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3번째로 감독을 맡은 팀에서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지 못한 채 중도해임이란 씁쓸한 결말로 감독직을 끝내며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퇴임 후 다시 2019년부터 [[NHK]]에서 야구 해설자를 역임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